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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데 헤아와 경쟁하는 로메로는 올드 트라포드에서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진정한 자원이다. 2016/2017 시즌 첫 경기에서 기회를 얻었다.

세르히오 로메로는 선수 생활 동안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2014년 월드컵 준결승에서 루이스 판 할을 좌절시키며 하이라이트를 썼다. 판 할은 당시만 해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던 이 20세의 선수를 아르헨티나의 라싱 클럽에서 유럽으로 불러들인 장본인이었고, 그를 AZ 알크마르의 수문장으로 택했다. 2009년 팀이 에레디비지에 정상에 오르며 세상을 놀라게 하는 동안 그는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고, 다음 시즌에는 950분간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기도 했다. 네덜란드 역사상 최다 무실점 시간 기록에서 단 107분이 모자란 기록이었다. 2009년 아스널과 맞붙었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그는 AZ의 1-1 무승부를 도우며 커다란 무대에서도 기가 죽지 않음을 증명했다. 아르센 벵거의 팀을 좌절시키는 이 골키퍼의 놀라운 선방에 고개를 저었던 아스널의 선수 중에는 로빈 판 페르시도 있었다. 판 할이 이 남아메리카 출신의 골키퍼를 높이 샀던 것은 분명하다. NAC 브레다와의 컵 경기에서 패하며 대회에서 탈락하자 선수 통로를 빠져다오나 문에 주먹을 날려 손에 골절을 입은 사건마저 용서했던 게 그 증거다. AZ가 우승 경쟁 중이었기 때문에 더 용납하기 어려운 부상이었다. 그러나 감독은 그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분노를 아꼈다. 그는 "아르헨티나인 특유의 기질 때문이다"고 결론내렸다. "좌절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건 세르히오가 영리하지 못했다." 로메로는 판 할이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난 뒤 이탈리아 세리에 B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여 삼프도리아에 합류했다. 이 아르헨티나인이 골대를 지키는 가운데 이 제노바 연고의 팀은 1부리그로 승격했고, 그는 다음 시즌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듬 해에는 모나코로 한 시즌 임대를 떠났다. 다니엘 수바시치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프랑스의 리그 1으로 떠난 것은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그는 이후 "흔치 않은 한 해였다"고 인정했다. "알렉스 사베야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나를 출전시켰지만 클럽에서는 같은 운이 없었다." 대표팀에�는 늘 높은 평가를 받았던 로메로에게 이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고국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정상에 오른 데 이어 2008년에는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건 그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지휘 아래 출전한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팀의 네 경기에 모두 출전헀다. 4년 후에도 사베야는 모나코에서 제대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믿음을 보였다. 골키퍼는 스타 플레이어로 가득 찬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약한 고리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받던 포지션이었지만, 그는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모든 의심을 날려버렸다. 이란과의 치열했던 조별리그 경기에서는 기적에 가까운 선방을 선보여 팝스타 리한나가 '로메로가 핵심을 찔렀다!'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떤 반응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 그는 스위스와 벨기에, 네덜란드를 상대한 토너먼트 경기에서 무실점을 이어갔다. 상파울루에서 열린 준결승에서는 승부차기 승리를 이끌며 세계 최고 대회에서의 우승이라는 판 할의 꿈을 좌절시키기도 했다. 로메로는 론 블라르, 베슬러이 스네이더르의 페널티 킥을 막아내며 아르헨티나의 영웅이 되었다. 이전까지 아르헨티나의 영웅적인 골키퍼로 꼽히던 세르히오 고이코체아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사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역사상 많은 경기에 출전했으며 1978년 월드컵 정상에 올랐던 전설적인 골키퍼 우발도 피욜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쳤다고 할 수도 있다. 피욜은 그의 우상이기도 하다. 로메로는 "축구에서는 '오리'(El Pato, 피욜의 별명)가 내 아버지다"고 주장했다. "내가 이룬 모든 것은 그 덕분이다. 그는 최고의 아르헨티나인이다. 그를 넘어설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2004년 7월 9일 로메로가 보여준 활약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판 할은 "로메로에게 승부차기를 어떻게 막아내는지 가르친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항변했다. "우리는 그를 유럽으로 끌어들인 클럽이었다. 그는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그럴 만한 실력을 지닌 이다." 로메로는 기쁨과 절망이 뒤섞인 상파울루의 경기장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의 감독에게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자신이 그토록 대단한 경력을 쌓는데 이 감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루이스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갔다. 네덜란드에 도착했을 때 그가 나를 도와줬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나는 말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나라에 있었고 그가 내게 도움을 줬다. 그가 나를 위해 해 준 모든 일에 감사한다. 그가 나에게 승부차기를 막는 법을 '가르쳤다'고 말한 것도 알고 있다. 진실은 그가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더 많은 관심을 주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에 도착한 첫날부터 그는 내게 골키퍼는 팀의 일원이고, 11명의 선수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토너먼트에 돌입한 후 로메로가 막지 못했던 유일한 슈팅은 독일 마리오 괴체의 골이었고, 그렇게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꿈도 무너졌다. 그렇지만 그의 명성만은 높이 치솟았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대표팀에서의 성취는 클럽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모나코에서의 임대 생활이 끝난 그는 삼프도리아로 돌아가 다시 벤치를 지켜야 했다. 그 대신 골키퍼 장갑을 끼고 있는 이는 에밀리아노 비비아노였다. 불과 몇 달 전 놀라운 영광을 누렸던 선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오래 견딜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졌다. 이적 시장이 거의 닫히기 전 도착해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당시 그가 올드 트라포드로의 이적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는 재빨리 루머를 부인했다. 그는 "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거절했다는 식의 많은 거짓말이 돌고 있다"고 불평했다. "내게 그런 일은 미친 짓이다." 그는 코파 이탈리아 한 경기를 포함해 모든 대회에서 총 11경기에 출전했고, 놀랄 것도 없이 세리에 A 클럽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덕분에 '올 여름 가장 매력적인 자유 계약 선수 중 하나'라는 수식어를 받기도 했다. 그는 판 할과 다시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국으로 날아와 계약을 마무리 했다. 192센티미터의 키에 어울리지 않는 '치키토'(Chiquito, 조그마한)라는 별명은 아이러니한 농담이 아니라 형제들이 모두 거구이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 특히 농구를 하는 디에고는 엄청난 키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제 로메로는 다시 한 번 당당히 일어서 자신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들일 완벽한 기회를 잡았다.

축소 About 세르히오 로메로
  • 포지션

    골키퍼

  • 국가

    아르헨티나

  • 생년월일

  • 입단

  • 유나이티드 데뷔전

기회가 올 때 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언제나 최선의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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