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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 찰튼, 그리고 버스비

1968년 마드리드의 영광 50주년

50년 전 오늘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날 중 하나이다. 맷 버스비의 선수들이 1968년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였던 유로피안 컵 준결승 2차전에서 승리하여 유로피안 컵을 들어올린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경기에서 맨유는 전반전에서 3-1로 지고 있었지만, 후반전 데이비드 새들러와 빌 폴케스의 스트라이크로 3-3 동점을 만들어냈고 산티아고에서 12만 명 관중의 벅찬 환호를 들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맨유 최고의 밤이었습니다.”
마지막 휘슬이 울린 후 버스비는 다음과 같이 인터뷰를 전했다. 드레싱 룸에서 패디 크래랜드는 감독이
“당연하게 눈물을 보였다”
며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을 안아줬다고 회상했다.
바비 찰튼
감정적이었던 바비 찰튼 경이 팬들과 함께하는 모습
뮌헨 사고 10년 후의 일이었고 당시 경기는 맨유는 프리미어 축구 경쟁의 결승이었다. 

조지 베스트의 득점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렸던 1차전에 있었던 유일한 득점이었고 맨유에 승리를 안겨준 득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맨유가 기회를 놓쳤다는 느낌이 사람들에게서 만연하기도 했다. 타임즈의 조프리 그린은 맨유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빈약함을 보여줬다”
라며 언급하기도 햇다. 

긍정적인 분위기는 거의 없었으며 스페인에서 열릴 2차전이 오히려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마드리드는 전반전 우리와 경기를 치렀습니다. 상대는 볼을 너무나 빠르게 다뤘습니다. 가까이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피리의 헤딩은 레알 마드리드의 리드를 끌어오기도 했다. 그 이전에는 겐토의 득점이 있었다. 미드필더 조코의 득점만이 경기를 멈추었다. 다시 이점을 회복하여 전반전 이전에 단숨에 3-1의 스코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프 타임에 드레싱 룸에서 제 방식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죠. 강력하게 밀어 부쳤고 그 길만이 우리가 공격적으로 나서서 1골만 넣은 그 상황을 풀어나갈 방법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길 수 없었을 겁니다. 더 많은 점수 차가 났다면, 뒤엎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우린 패하는 걸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선수들은 감독의 지시에 응답했다. 빌 풀케스의 득점과 데이비드 새들러가 15분 남은 상황에서 3-3을 만들어냈으며, 이로써 두 경기 통산 4-3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제 첫 리엑션은 '뭐하는거야?'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크래랜드가 회상한 당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가 최고였다는 걸 빌이 알고 있었던거죠.”


“코너에 제가 다가갔고 볼을 제가 다루려고 했었습니다.”
빌의 회상이다.
“조지가 절 봤고 다시 한 번 무시당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공격 스킬이 절대 유명하지 않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순간이었죠!”


“조지가 슈팅을 할 거란 생각이 들었고 대신 그는 가장 멋진 볼을 제게 안겨주었습니다. 완벽했고 득점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습니다. 12만 명의 스페인 분들의 함성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전 득점이 아닐 거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동료 선수들이 제게 달려오는 장면이었습니다. 무릎이 걱정될 정도였어요.”
맨유 원정 팬들의 몇몇이 경기장으로 달려갔고 그들의 영웅을 껴안았다. 함께, 그들은 바비 찰튼을 안내했습니다. 경기장 밖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그였다. 

“맷 버스비는 꽤 오랫동안, 그리고 굉장히 열심히 유럽 내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절대 신뢰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요. 그 날은 그의 꿈이 이루어진 날이기도 할 겁니다.”
데일리 메일의 로날드 크루서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당시는 클럽의 역사상 최고의 밤이었다. 그리고 그럴만한 맨유였고 감독이었다. 뮌헨 사고 이후 10년만의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웸블리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이다.
“우린 그 때 가장 마지막 단계에 와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