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비 찰턴 경

보비 찰턴 경을 기리며 (1937-2023)

토요일 21 10월 2023 16:3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진정한 거장 중 한 명인 보비 찰턴 경의 부고를 애도의 마음을 담아 전한다. 향년 86세.

보비 찰턴 경은 세대를 뛰어 넘는 영웅이었다. 그의 별세 소식은 맨체스터 뿐만 아니라 영국 전역은 물론 전세계 축구가 있는 곳에서 아픔으로 전해진다.

오랜 기간 동안 '보비 찰턴'은 전세계 어디서나 쓰이던 영어 단어 두 개 중 하나였다. 그의 명성과 업적은 축구를 넘어섰다.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로, 보비 찰턴 경 보다 더욱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보비 찰턴 경
보비 찰턴 경은 20세의 나이에 뮌헨 참사에서 살아남았다. 힘겨운 회복 끝에 그는 다시 그라운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의 영광을 이끌었다. 17세의 나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데뷔해 758경기를 소화하며 249골을 기록했다. 2008년 라이언 긱스, 2017년 웨인 루니가 그의 기록을 뛰어 넘을 때 까지 오래도록 꺠지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모든 클럽의 관심을 받았던 어린 보비 찰턴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재키 밀번의 조카로, 1953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소년에 합류했고 1954년 10월 프로 계약을 체결했다.

1954년, 1955년, 1956년에 FA 유스컵을 우승한 뒤, 그의 1군 데뷔전은 1956년 10월 6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찰턴 애슬레틱과의 경기였다. 어린 찰턴은 경기에 즉각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는 부상이 있었지만 두 차례 득점포를 가동하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보비 찰턴 경은 당시 "버스비 감독이 나에게 뛸 수 있냐고 물어봤다"라며 "사실 발목이 아팠지만 괜찮다고 하고 운에 맡기며 '괜찮다'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보비 찰턴 경
인상적인 데뷔에도 불구하고 보비 찰턴 경은 1956/57 시즌 까지 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했다. 이후 '버스비의 아이들'이 일원으로 10골을 넣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구단 역사상 5번째 우승이었다. 1군에서의 경쟁은 치열했지만 불턴 원더러스와의 다음 시즌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다시 진가를 나타냈다. 버스비 감독은 날이 갈 수록 보비 찰턴 경을 선발에서 제외하기 힘들었다.

1958년 2월, 보비 찰턴 경은 유러피언컵 준결승,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와의 경기에서 두 차례 득점하며 3-3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경기 후 맨체스터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선수단이 탑승한 비행기가 뮌헨에 재급유를 위해 기착했고, 재앙이 발생했다. 1군 선수 8명을 포함해 23명이 사망했다. 찰턴 경은 부상을 당했다. 그의 부상은 비교적 경미해 한 달 후에 복귀할 수 있었고 팀의 FA컵 결승 진출을 도왔다. 하지만 결승에서 볼턴에게 0-2로 패배했다. 그리고 1963년, 찰턴 경은 레스터시티를 상대로 승리하며 FA컵을 품에 안았다
 
보비 찰턴 경
보비 찰턴 경은 뮌헨 참사 이후 팀을 재건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그의 존재는 다른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도움이 됐다. 데니스 로, 조지 베스트 등도 마찬가지였다. 셋은 맨유의 삼위일체로 불린다. 딥 라잉 포워드 역할로 전환하며 그는 최고의 모습을 뽐냈다. 결국 1965년과 1967년 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1966년 월드컵 직전 보비 찰턴 경은 축구 기자 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 올해의 유럽 축구 선수에 선정됐다. 그리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포르투갈과의 준결승 2골을 이끌어내는 등 활약 속에 우승을 견인했다. 찰턴 경은 국가대표팀 106경기를 소화했으며, 49득점을 기록했다. 해당 기록은 1970년 5월에 세워져 2015년 9월 웨인 루니가 50번째 득점을 할 때야 비로소 깨ㅏ졌다.

월드컵 우승과 벽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최고의 순간은 1968년 5월이었다. 그는 주장으로 맨유를 이끌고 웸블리에서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끌었다. 벤피카와의 결승 4-1 속에 그의 한 골이 담겨 있었다. 경기 후 그는 우승 축하 세리머니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10년 전 비극으로 유명을 달리 한 동료들, 친구들에 대한 마음이었다.
보비 찰턴 경

그는 1973년 은퇴 전까지 맨유의 삼위일체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2년간 감독으로, 프레스턴노스 엔드에서 감독 겸 선수로 활약했다. 그리고 1975년에 사임했다. 그리고 그는 1976년 아일랜드의 워터포드에서 뛰기도 했는데, 이후 위건 애슬레틱의 경영진으로 합류했다.

1984년 6월 그는 맨유의 이사진이 되었다. 10년 후, 그는 대영제국 훈장 OBE와 CBE를 거쳐 기사 작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구단의 얼굴로, 잉글랜드 축구와 전세계 축구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보비 찰턴 경은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또 미래였다. 그의 삶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공헌 역시 큰 부분이었다.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을 받는 이들을 위해 보비 찰턴 경 재단을 설립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에에브라와 퍼거슨 감독
이후 그는 올드 트라포드에서 거의 모든 경기를 관전했다. 그의 아내인 노마 여사와 함께 팬들 사이에서 언제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2020년 11월 보비 찰턴 경은 치매 진단을 받았다. 당시 구단은 성명을 통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모든 구성원들은 끔찍한 질병과 마주한 그의 소식에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한 응원과 사랑을 지속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헌신적인 삶, 흔적은 올드 트라포드에 남아있다. 그의 전설적인 동료들, 데니스 로 그리고 조지 베스트와 함께 동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보비 찰턴 경의 스탠드 역시 올드 트라포드의 남쪽에 2016년 4월부터 명명되어 남아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깊은 애도의 마음을 노마 여사와 그의 가족 친지 모두에게 보내며, 너무나 슬픈 시간을 함께한다. 축구가 계속되는 한, 보비 찰턴 경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