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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토나가 복귀했던 날

돌이켜보면 어떤 순간들은 흑백사진처럼 단순해 보일 때가 있다.

축구는 늘 11명이 함께하는 경기였지만, 에릭 칸토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모든 것을 바꿔놓은 사나이였다.

프랑스 공격수 칸토나는 1990년대 성공의 촉매로 언제나 회자된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숙적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이 독특한 센터포워드를 영입한 것은 완벽한 한 수였다.

클리셰처럼 들리겠지만, 그는 매 경기 최소 한 번은 입장료를 지불할 만한 순수한 천재성을 발휘하곤 했다.
칸토나
그라운드 위의 예술가였던 칸토나는 잔재주와 트릭으로만 채워진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하지만 1995년 1월 셀허스트 파크에서 크리스털 팰리스 팬을 공격하며 선을 넘은 것은 사실이었다.

맨유 팬들 중 많은 이들이 도발에 대한 동정을 보냈지만, 그가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했다. 실제로 경기장 밖에서는 징역형이 선고되기도 했으나(이후 사회봉사로 감형), 클럽이 시즌 종료까지 에이스를 정직시킨 것은 타당한 조치처럼 보였다.

그러나 FA는 징계를 8개월로 연장했고, 그 결과 1995/96 시즌 초반까지 결장이 이어졌다.
 
만약 웨스트햄의 루덱 미클로슈코가 시즌 최종전 업튼 파크에서 인생 경기를 펼치지 않았다면, 그리고 에버튼의 네빌 사우설이 FA컵 결승에서 마찬가지로 엄청난 선방쇼를 벌이지 않았다면, 맨유는 2년 연속 더블을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대신 우리는 무관에 그쳤고, 여름 내내 공허함만 남았다. 두 골키퍼의 전설적인 활약이 컸지만, 더 중요한 건 칸토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자신감과 오만함, 반드시 이길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존재가 사라졌다는 점이 크게 느껴졌다.

에릭은 마지막 디비전 원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던 팀을 진정한 승리 팀으로 변모시켰던 인물이었고, 그가 없는 상황에서 팬들은 그것이야말로 1994/95 시즌 마지막 6일간의 악몽 같은 실패를 설명하는 차이라고 생각했다.

이듬해 시즌은 불안 속에 시작됐다. 퍼거슨 감독이 폴 인스, 안드레이 칸첼스키스, 마크 휴스라는 인기 선수들을 내보내고 경험 없는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맡겼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뒤 위대한 감독을 의심한 것이 어리석었다는 게 증명되었지만, 시즌 개막전 애스턴 빌라전 패배와 함께 BBC 해설가 앨런 핸슨이
“아이들로는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다”
라고 말했을 때 분위기는 불안으로 가득했다.

결국 맨유가 두 번째 더블을 달성했던 그 시즌을 돌아보면, 칸토나의 복귀가 모든 것을 다시 결집시켰다는 식으로 설명되곤 한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중요한 골들을 쏟아내며 1-0 승리들을 이끌었고, 웸블리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날린 발리슛으로 FA컵 결승까지 장식했다.

하지만 사실 선수단은 그가 돌아오기 전에도 개막전 패배 이후 리그에서 5연승을 기록하며 반등하고 있었고, 셰필드 웬즈데이전 무승부로 10월에 접어들 당시 이미 3위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던 날이 다가왔다.

1995년 10월 1일, 정확히 오늘로부터 30년 전이었다.

상대는 리버풀이었고, 분위기는 극적이었다. 에릭이 돌아왔고, 올드 트라포드는 프랑스 삼색기로 뒤덮였다. 킥오프 직후부터 경기장은 뜨겁게 끓어올랐고, 경기 시작 2분 만에 칸토나가 니키 버트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로비 파울러가 두 번의 임상적 마무리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리버풀이 앞서 나갔다.

다시 의문이 피어올랐지만, 경기 감각이 완벽하진 않아도 칸토나는 여전히 그라운드에 있었고, 과거 팀을 우승으로 이끌던 그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었다.
 
맨유
71분, 라이언 긱스가 제이미 레드냅에게 페널티 박스 안에서 파울을 당했다.

그리고 맨유의 7번이 전면에 나섰다.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칸토나는 데이비드 제임스를 속이며 승부를 2-2로 만들었다.

경기는 광란으로 터졌고, 칸토나는 골대를 휘감으며 팬들의 환호를 즐겼다. 이번엔 스탠드 속이 아니라 경기장 안에서였다.

칸토나가 돌아왔고, 자신감과 위풍당당함이 되살아났다. 맨유는 다시 국내 무대를 제패하며 더블을 완성했다.

칸토나는 1997년 또 한 번 리그 우승을 이끌고 단 30세의 나이에 충격적인 은퇴를 선언했다. 놀랍게도, 그는 올드 트라포드에서 뛴 네 시즌 모두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그 이전 리즈 시절까지 포함하면 다섯 시즌 연속 리그 정상에 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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