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그렉

해리 그렉을 기리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가족 전체가 골키퍼로 활약했던 해리 그레기 87세의 나이로 작고했다는 슬픈 소식을 접했다.


해리는 맨유 역사에 결코 저평가 될 수 있는 기여를 했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대의 서포터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간단히 말해,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맨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며, 그라운드 안팎에서 항상 기억되고 존경 받을 것이다.
빌라 파크에서 선방하는 그렉
해리 그렉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맨유의 주전 골키퍼였다.
1958년 2월에 있었던 뮌헨 참사의 생존자인 그렉이 그 참혹했던 날에 보인 행동은 그의 영웅적인 용기와 기개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는 피범벅이 된 채로 비행기 잔해 속으로 뛰쳐들어가 갇힌 사람들을 구조했다. 임산부와 20개월 된 아기, 그리고 맷 버스비를 구했다.

경기장에서도 그랬다. 정말 강인했고, 목청이 컸으며, 거칠고 위엄있었다. 대담한 성격와 힘센 체격으로 1957년 12월 당시 골키퍼 최고액 이적료인 2만 3천만 파운드를 기록하며 맨유에 입단했다. 입단 세 달만에 뮌헨 참사를 겪은 그렉은 지미 머피가 임시 감독을 맡아 나선 FA컵 결승전 진출을 이끌며 활약했다. 비록 결승전에서 볼턴 원더러스에 패배했지만 준우승 메달은 여전히 올드 트라포드에 전시되어 있다.

북아일랜드 대표 선수로도 활동한 그렉은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해 8강 진출을 이끌며 대회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어깨부상으로 1963년 FA컵 결승전에 결장하기 전까지 맨유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렉은 외과의사로부터 다시는 경기에 나설 수 없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큰 수술을 받은 뒤 7개월 만에 벤피카를 상대로 올드 트라포드에 다시 섰다.
 
해리 그렉
1960년 팀 사진에서 해리 그렉
1966년 1월에 이어진 부상으로 인해 그의 선수 경력은 단축되었다. 그는 스토크 시티에 플레잉 코치로 합류했다. 경기에는 두 차례만 출전했고, 이후 슈루즈버리 타운, 스완지 시티, 크루 알렉산드라의 감독을 맡았다.

쿠웨이트로 자리를 옮겨 키탄 스포츠 클럽의 플레잉 코치를 맡은 그렉은 1978년 맨유로 돌아와 골키퍼 코치가 됐다. 여기서 3년을 더 보냈다. 1995년 6월 그렉은 MBE를 받았고, 2019년에는 OBE를 받았다. 

2012년에 알렉스 퍼거슨 경은 당시 79세였던 그렉을 기리기 위한 경기에 맨유 주전 팀을 내세워 아일랜드 리그 선발팀과 벨파스트에서 경기했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개인적으로 해리를 향해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우리는 항상 역사를 창조하는데 일조한 선수들에데 경의를 표해야 한다. 해리는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뮌헨 참사 당시 대단한 용기를 보여줬다.”


“그는 맨유의 장수한 골키퍼이기도 했다. 그는 맨유의 풍부한 역사의 일부분이며, 우리는 그를 결코 잊어선 안된다.”


해리의 업적과 행동은 올드 트라포드에서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해리 그렉
2012년 윈저 파크에서 기념 경기로 헌사를 받은 그렉
해리 그렉 1932 - 2020

포지션: 골키퍼

국적: 북아일랜드

생년월일: 1932년 10월 27일

맨유 입단일: 1957년 12월 1일

맨유 데뷔전: 1957년 12월 21일 v 레스터 시티 (홈), 풋볼 리그 디비전 원

맨유 퇴단일: 1966년 12월 1일

출전: 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