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트래포드에서의 FA컵 득점을 한 루카쿠

루카쿠, 득점 그룹에 합류

화요일 20 3월 2018 12:28

루카쿠의 오프닝 득점으로 브라이튼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그의 득점은 모든 컴피티션에서 25번째 득점이 되었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인상적인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는 루카쿠이다.

루카쿠는 첫 시즌 마일 스톤에 다다른 맨유의 8번째 선수가 되었으며 데니스 로, 루드 반 니스텔로이, 드와이트 요크를 따라 루카쿠의 이름도 올리게 되었다. 

지난 여름 에버튼에서 이적한 후로 루카쿠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슈퍼컵, 프리미어리그, 챔스리그, FA컵에 클럽 데뷔를 치르고 있으며 그 자신을 견디기 위해 조금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았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는 시즌을 이미 보내며 실력을 쌓아가는 그이다.

하지만 루카쿠가 맨유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을 하는 선수로 올라서기 위해 필요한 득점은 과연 몇 번일까? 7명의 선수들이 여기 더 있다. 첫 시즌 맨유 선수로서 25번 이상의 득점을 기록한 선수들이..

루드 반 니스텔로이 (36득점, 2001/02)

클럽 역사상 어떤 선수도 니스텔로이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한 선수는 없다. 데뷔 시즌 36번의 득점을 기록했으며 1년을 무릎 부상에서 있었는데도 말이다. 주춤했던 그의 모습이 끝이라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한 경기생활을 해내기도 했다. 맨유는 2000년 여름 그와 계약을 시도했지만 당시 메디컬 테스트와 트라우마 부상으로 결정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퍼거슨 경은 포기하지 않았다. PSV 에인트포반과 계속해서 연을 유지했고 니스텔로이가 1년 후 맨유에 영입되었다. M16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낸 것이 두 번째 시즌이었다. 44번의 득점을 기록했고 2002/03 시즌에는 맨유에 우승을 가져오기도 했다. 131번의 경기에서 100번의 스트라이크에 도달한 그의 시즌을 누가 잊을 수 있을까. 36번의 득점이 맨유 선수로는 최고로 남아있으며 클럽에서 첫 시즌을 보낸 그였다.
2001년 12월 풀햄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한 니스텔로이
브라이언 맥클레어 (31득점, 1987/88)
 
니스텔로이의 등장이 센세이셔널했던 것처럼 그는 팀에 합류해서 세 번 연속으로 시즌에서 우승을 거둔 선수이다. 미드필드에서 가장 활약하던 선수였으며 어떤 경기에서도 적어도 한 번은 나타났다. 라이언 긱스, 베컴, 폴 스콜스, 로이 킨, 그리고 후안 세바스티앙 베론처럼. 반면 브라이언 맥클레어는 1987년 여름부터 뿌리를 박고 맨유에서 끝을 낸 선수이다. 디비전 원에서 11번째로 말이다. 당시 조지 베스트 이래로 어떤 선수도 시즌에서 25번의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초키'로 알려져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셀틱에서 이적한 이후 31번의 득점을 기록했고 당시 리그에서 맨유는 2위를 차지했다. 그는 트로피를 끌어모으던 시즌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냈으며 1990년대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클럽에서 보냈던 그의 가장 첫 달이 중요했다. 새로운 감독이었던 퍼거슨 경을 증명한 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맨유에 초반 출전한 경기 중 하나인 첼시와의 경기를 지배했던 맥클레어
로빈 반 페르시 (30득점, 2012/13)

초키가 퍼거슨 경의 첫 슈퍼스타였다면, 로빈 반 페르시는 그의 마지막 슈퍼스타이다. 축구 역사상 적은 선수들만이 영향력을 미치는데, 그들의 이름을 모든 챔피언십에서 떨치곤 한다. 하지만 이전 아스널 맨의 영향력은 맨유의 20번째 우승을 가능케했다. 2011/12 시즌 우승에서 맨시티에 패한 후, 알렉스 경은 팀의 자신감 회복에 스파크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반 페르시의 득점이 전체 시즌을 통틀어 불을 지핀 셈이 되었다. 우승은 11번의 승점을 끌어왔고 반 페르시의 26번째 득점이 첫 시즌 최고의 기록이었다. 아쉽게도 로빈은 첫 시즌만큼 잘할 수는 없었다. 퍼거슨 경의 은퇴 이후로 말이다. 2015년 페네르바체로 이적했으며 105번의 출전에서 58번의 득점을 기록했다.
드와이트 요크 (29득점, 1962/63)

클럽 역사상 최고의 시즌은 현재 거의 대부분이 기억하는 매니악 11일의 시간일 것이다. 토트넘, 뉴캐슬,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모두 이기며 예상치못한 승리를 거뒀다. 드와이트 요크는 세 개의 중요한 경기에서 득점하는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맨유는 깨끗하게 승리하며 세 개의 트로피를 차지했다. 그의 파트너였던 앤디 콜은 우승에 연료가 되었으며 가을과 겨울을 지나 우승에 이르게 했다. 요크의 득점은 스타일이 다양했다. 그의 지성과 열정은 수비진들에겐 악몽이었고 동료들에겐 기쁨이었다. 맨유에서의 첫 해가 그에겐 최고의 해로 남아있다. 하지만 클럽에서 시즌을 보내며우승을 차지한 것도 그였다. 152번의 경기 중 66번의 득점을 총 시즌에서 기록했다.
 
데니스 로 (29득점, 1962/63)
 
경기장에서 왕과 같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수많은, 그리고 엘리트 클럽의 모든 선수들 사이에서 말이다. 데니스 로의 출전을 아마 약간 놀라운 일일 수 있다. 맷 버스비가 토리노에서 로를 데려오는데 기록적인 비용을 냈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63년 FA컵 결승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첫 시즌에 놀랍지 않은 훌륭한 시즌을 보내기도 했다. 로는 시즌에서 마지막 골이자 29번째 득점으로 문을 열었다. 클럽의 폿트 뮌헨 트로피를 지켜내기도 했다. 이후 시즌에서 그는 46번의 득점을 기록했고 여전히 맨유 역사상 개인 기록으론 시즌을 잘 보낸 선수 중 하나이다. 그는 첫 다섯 번의 시즌 중 한 시즌에서만 25개 득점에 다다르지 못했다. 237번의 커리어 득점을 클럽에 있는 동안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탑 10위에서 데니스 바이올렛만 더 나은 득점률을 보이고 있다.
1962/63 데뷔 시즌을 성공적으로 치른 데니스 로
즐라탄 이브라모비치 (28득점, 2016/17)

당황스러운 사실이지만 우린 즐라탄이 첫 시즌에서 얼마나 많은 득점을 기록했는지 전혀 모를 뻔했다. 즐라탄은 무릎 부상으로 넘어졌었다. 2016/17 시즌부터 지금까지 진행중이지만 46번의 경기에서 28번의 득점을 기록했다. 즐라탄은 이번 시즌 7번의 출전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한 시즌동안 커뮤니티 쉴드, 리그 컵, 유로파리그까지 활약한 그였으며, 올드 트래포드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잭 피큰 (25득점, 1905/06)

초창기 맨유에서 25명의 선수로 활동하던 멤버 중 하나이다. 그는 블라이모스에서 이적한 선수로 1905년 여름 이적했으며 20번의 리그 득점을 기록했고 다섯 번의 FA컵 스트라이크를 기록했다. 그는 퍼스트 팀에서 그의 위치를 잃기도 했다. 샌디 턴불의 발발로 인해서 말이다. 우연하게도 턴불은 앞선 시즌 중반에 합류했고 에릭 칸토나와 같은 기록을 갖고 있다. 첫 풀 시즌에서 초석을 세운 잭 피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