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버스비

매트 버스비 경의 이야기

화요일 20 1월 2026 09:19

어린이를 위한 책 'United Heroes'는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이콘들의 이야기를 담아, 다음 세대의 서포터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한다.

어린 맨유 팬들을 위해, 위대한 매트 버스비 경에 대한 이 챕터를 소개한다…

대부


매트 버스비는 1945년부터 1969년까지 맨유 감독을 맡았고, 1970/71시즌에 잠시 복귀해 다시 팀을 이끌었다. 그는 클럽을 잠들어 있던 거인에서 세계 축구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바꿔 놓았다.

25년에 걸친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세 개의 위대한 팀을 만들어냈고, 수많은 선수와 스태프가 목숨을 잃은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았으며,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클럽의 기틀을 마련했다.

아마도 알렉스 퍼거슨 경을 제외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 클럽에 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매트 버스비
시작

버스비가 스코틀랜드의 한 광산 마을에서 태어났을 때, 의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오늘 이 집에 축구 선수가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버스비는 스털링셔의 데니 히브스라는 유소년 팀에서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드러냈고, 그 실력이 워낙 뛰어나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하게 됐다. 맞다, 정말이다!

이후 10년 동안 버스비는 잉글랜드 리그 최고의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활약했다. 1934년에는 시티 소속으로 FA컵을 우승했고, 이후 리버풀로 이적해 주장까지 맡았다. 그렇다, 그 팀에서도 뛰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그의 선수 커리어는 중단됐다.
 
맨유 합류

전쟁 기간 동안 버스비는 여러 팀에서 게스트 선수로 뛰었지만, 전쟁이 끝나갈 무렵 맨유의 수석 스카우트 루이스 로카로부터 ‘수상한 일자리’에 대한 편지를 받았다.

로카는 당시 버스비가 몸담고 있던 리버풀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길 바랐다. 그 일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일자리는 전쟁이 끝나는 즉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차기 감독이 되는 자리였다.

1945년, 버스비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새 수석코치가 된 작지만 불같은 웨일스인 지미 머피와 함께 맨유와 잉글랜드 축구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매트 버스비 경
맨유는 공격적이고 보는 재미가 넘치는 축구를 펼치며 전쟁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겼고, 1948년 FA컵과 1952년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30년 넘게 이어진 무관의 시간을 끝낸 첫 트로피들이었다.

첫 번째 위대한 팀을 만들던 동시에, 버스비와 머피는 뒤에서 또 다른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던 선수들을 대신할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영국과 아일랜드 전역에서 최고의 유망주를 발굴하고 영입해 육성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곧 ‘버스비 베이비즈’가 탄생했다. 매트가 이 선수들을 유난히 어린 나이에 1군에 기용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이 ‘베이비즈’에는 크고 기술적인 던컨 에드워즈, 윙어 에디 콜먼과 데이비드 페그, 그리고 북동부 출신의 어린 소년 보비 찰턴이 포함돼 있었다.

버스비는 이 젊은 선수들을 완벽하게 관리했고, 맨유는 1956년과 1957년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팀 평균 나이는 고작 21세로, 대부분의 우승 팀 평균 나이인 26세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매트 버스비 경
버스비는 모든 선택에서 용기를 보여줬다. 그는 이 ‘베이비즈’를 신뢰했을 뿐 아니라, 맨유가 잉글랜드 클럽 가운데 처음으로 유러피언컵에 참가하도록 했다. 이 대회는 훗날 챔피언스리그로 불리게 된다.

첫 시즌, 맨유는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패했고, 이는 다음 해 반드시 그들을 넘어서겠다는 버스비의 결의를 더욱 굳게 만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1958년 2월 6일,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와의 경기 후 귀국하던 중, 연료 보급을 위해 들른 뮌헨에서 비행기가 추락했다. 이 사고로 선수 8명을 포함해 총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버스비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독일의 병원에서 9주 동안 입원했고, 두 차례나 의료진과 가족이 최악의 상황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서서히 회복했다. 많은 친구를 잃은 슬픔 속에서 한때 축구계를 떠날 생각도 했지만, 결국 계속 나아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리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걸렸지만, 버스비는 세 번째 위대한 팀을 만들어냈다. 뮌헨 참사를 겪고 살아남은 빌 파울크스와 찰턴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했고, 유소년 시스템에서는 또 다른 젊은 선수들이 올라왔으며, 스트라이커 데니스 로 같은 새로운 영입도 더해졌다.
브루노 페르난데스
이 치명적인 골잡이의 활약 속에 맨유는 1963년 FA컵을 들어 올렸고, 이어 1965년과 1967년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버스비와 선수들이 가장 원했던 것은 유러피언컵이었다.

비극으로부터 10년이 흐른 뒤, 찰턴, 로, 조지 베스트로 구성된 ‘유나이티드 트리니티’가 이끈 환상적인 팀과 함께, 버스비는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뤘다. 유러피언컵 우승이었다.

웸블리에서 벤피카를 4-1로 꺾고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은 곧바로 버스비에게 달려갔다. 그 우승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맨유는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유럽 정상에 올랐고, 이 위업으로 그는 1968년 7월 기사 작위를 받아 매트 버스비 경이 됐다. 그는 한 시즌 뒤 은퇴했고, 잠시 임시 감독으로 돌아온 뒤 오랜 기간 클럽 이사로 봉사했다.

그는 1994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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