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맷 버스비 감독의 부임과 함께 맨유로 돌아온 피어슨은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맡았고, 잉글랜드 대표팀이 가장 풍부한 공격 자원을 보유했던 그 시절에 최고의 나날을 보냈다.
그는 버스비가 만들어낸 첫 번째 맨유 팀의 핵심 선수였다. 1948년에는 FA컵에서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았는데, 더비 카운티와의 준결승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고 블랙풀과의 결승전에서도 골을 터트리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1952년에는 리그 우승도 차지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피어슨은 1946년부터 1953년까지 일곱 시즌 동안 팀이 치른 경기 중
단 13경기에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잭 로울리와 완벽한 호흡을 선보였다. 게다가 그는 날카롭고 정확한 슈팅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1953/54시즌이 되자 신예 재키 블랜치플라워에 밀려 자리를 내준 피어슨은 1954년 2월, 4,500파운드의 이적료에 버리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체스터에서는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며 40세까지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 축구화를 벗은 후에는 체셔의 프레스트버리에서 부(副)우체국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