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메오네와 베컴

디에고 시메오네와의 인연

화요일 14 12월 2021 13:43

10년 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지휘봉을 잡은 이후 디에고 시메오네는 세계 축구계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 12월 23일 아르헨티나 출신 시메오네가 그레고리오 만사노의 뒤를 이어 로스콜초네로스의 감독을 맡았을 때, 스페인 수도를 연고로 한 클럽 분위기는 다소 썰렁했다.

레알 베티스전 홈 패배로 라 리가에서는 10위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독주하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승점과 비교하면 절반 밖에 얻지 못했다.

하지만 거의 정확히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시메오네는 스페인 챔피언으로 팀을 이끌었다. 그는 2014년 리스본에서 도시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 의해 잔인하게 패배한 아틀레티와 함께, 두 번의 유로파리그 우승과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진출일 이뤘고, 두 번의 라리가의 우승을 해냈다.

시메오네를 유럽의 엘리트 감독으로 꼽을 만한 인상적인 이력이다. 특히 젊은 독자들은 터치라인에서 온통 검은 옷을 입는 것으로 알려진 이 비타협적인 감독이 자신만의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많은 역사가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아틀레티 팀이 30년 만에 붉은 팀과의 첫 만남을 준비하는 시점에 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모든것 article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맞대결을 벌인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아틀레티코에 대한 정보를 소개한다.

시메오네는 모국 아르헨티나의 벨레스 사스필드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1990년 세리에A 클럽 피사 입단으로 유럽으로 이적할 무렵 이미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 선수였다.

세비야로 이적이 이어졌고 그는 1993년 아르헨티나와의 코파 아메리카 2연패를 달성했을 때 여전히 안달루시아에 있었다.

1996년 아틀레티코에서 국내 대회 더블 우승을 이룬 뒤 시메오네와 맨유의 인연은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하며 이탈리아로 향한 뒤에 나왔다. 

미드필더 시메오네는 1998년 월드컵 본선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장이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12년 전의 유명한 원한이 있었던 잉글랜드와 8강에서 만났다.  
시메오네는 경기 4년 후 더 옵저버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정치사와는 별개로, 온 나라의 소망은 잉글랜드를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1998년에 그것을 알고 있었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마음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는 만날 때마다 이기고 싶은 욕구가 더 크고 더 진심을 갖고 한다. 이것은 클래식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김으로써 우리 나라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모두 알하고 있기 때문에 클래식 경기로 여기고 뛰었다."

잉글랜드와 맨유의 스타 데이비드 베컴은 중원 한복판에 있던 시메오네로부터 심한 도전을 받고 쓰러졌다. 생테티엔에서 열린 16강전 경기 47분 경,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승리하려는 열망이 극에 달했다.

순간적으로 좌절했던 베컴은 시메오네에 대한 보복으로 허벅지를 가격하려 다리를 들어올렸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퇴장 당한 베컴
약간의 스킨십이었지만 킴 밀턴 닐슨 주심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시메오네는 뒤로 넘어져 격분했다.

베컴을 퇴장시키고 2-2 동점으로 경기를 기울이려는 명백한 시도였다. 시메오네는 나중에 이 사실을 시인했다.

"나는 그에게 태클했었다."라고 시메오네는 회상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땅바닥에 쓰러졌다. 내가 일어서려 할 때, 그가 뒤에서 나를 걷어찼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이용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어떤 사람이든 똑같이 그것을 이용했을 것이다."

"때로는 퇴장당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잉글랜드는 그 때 한 명의 선수를 잃었다."

"어쨌든 당신은 인생에서 발견되는 모든 기회를 이용하게 된다. 자기 뜻대로 되는 기회를 이용하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글렌 호들 감독은 계속해서 고전적인 승부 차기를 당했고, 베컴은 불행히도 시메오네의 함정에 희생되어 맨체스터 지역 밖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스포츠는 구원을 제공하는데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다. 시메오네를 다시 만날 기회가 베컴에게 빠르게 주어졌다.

23세였던 베컴은 맨유의 미드필더 오른쪽에서 경이로운 시즌을 치르고 있었다. 인테르 밀란과 맞닥뜨릴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을 기여했다.

전 시즌 UEFA컵 우승팀인 인테르 밀란은 시메오네에 호날두, 로베르토 바조, 유리 조르카에프 등을 자랑했고 많은 이들이 유럽 최고의 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록 폴 스콜스가 베컴 옆에 서있었지만, 경기 전 악수 상황에서 베컴과 시메오네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불과 6분 후, 맨유의 7점 베컴은 드와이트 요크가 그의 먼 포스트에서 잔루카 팔류카를 무너트린 득점을 할 수 있도록 크로스를 올렸다. 유벤투스와 바이에른 뮌헨을 연이어 꺾으며   유례없는 트레블을 향한 길을 닦은 맨유가 인테르 밀란을 꺾었다.
 
시메오네와 베컴의 악수
올드 트라포드에서 경기 후 시메오네와 셔츠를 교환한 베컴은 그 역사적인 시즌을 보낸 맨유의 가장 중요한 선수였다. 1999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1998년 프랑스에서 비난에 이은 파란만장한 결과였다.

시메오네는 1999년 8월 맨유를 1-0으로 꺾게 되며, 세리에A와 유럽 슈퍼컵에서 우승할 라치오로 이적했다.

하지만 베컴이 그의 오랜 적수가 소개되기 전에 교체되었기 때문에, 그 두 선수는 또 한번의 대결에서 마주치지 않았다. 

베컴이 2002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물리치고 조기 조별리그 출전을 돕기 위해 페널티킥을 성공하며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에서 재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시메오네는 2006년에 은퇴하여 곧바로 감독 경력에 뛰어들었다. 이 경력은 이제 그가 매우 즐기는 것, 즉 잉글랜드 팀을 물리치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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