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토마스

미키 토마스의 싸움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나를 아는 사람은 누구든 내가 태평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첫 싸인은 아침에 사과를 먹을 때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에서 시작되었다. 나에겐 그것이 기준과 같은 것이었다. 내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아침은 달랐고, 사과를 삼킬 수가 없었다. 

사과 조각이 크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다음날도. 

똑같았다.

의사에게 찾아갔고 사과를 삼킬 수 없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단순히 역류성이거나 할 것 같다며, 나에게 약을 지어줬다.

하지만 장기간 지속되었고, 의사에게 계속해서 찾아갔다.

“아무것도 먹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못삼키겠어요.”

의사들은 모든 것이 괜찮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찾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증상이 깨끗했다.

이후 나는 맨유와 투어에 임했고 브라이언 롭슨과 함께 했다. 롭슨이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의사를 만나봐야 할 것 같아”

롭슨이 나를 보는 눈빛이 무섭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서 친구들을 만났다. “너무 힘들다”라고 내 상황을 설명했다. 다른 의견을 들어보라며 나에게 조언해주었고, 이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 다음주에 나는 의사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카메라로 살펴볼 수가 없어요.” 의사가 말했다.

“무슨 상황인가요?” 내가 물었다.

“꽉 막혀있어요. 선생님의 경우에는 말이죠. 고이장히 큰 암 덩어리가 있고요.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출혈도 있고요.”

그 말을 듣고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나와 함께 와준 친구는 약속이 있다며 집에 갔기 때문이었다. 모든 상황이 정상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됐나요?”

“모르겠어요. 살펴봐야겠어요. 뭔지 봐야하고, 몸 전체를 검사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극도의 고통을 기다리는 시작이었다. 내가 살아남든 아니든 나를 죽일 거란 생각이 들었고,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CT 스캔을 받았다. 음성이였고, 몸 한 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또 한 번의 체크를 받았다. 둘 다 10일이 걸렸고, 나와 가족들은 긴장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암이 내 장기에 있는지 궁금할 뿐이었고, 깨끗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현재는 모든 것이 괜찮다는 의견이고, 세 번째 의견을 주었다. 

왜? 두 가지 의견만으로 충분한데.

이번은 어디에든 보일 가능성이 있다. 발가락이든 어디든. 또 한 번의 열흘이 지났다. 무서웠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결과는 한 쪽에 잇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말했다. “큰 수술이 될 겁니다.”

“50/50이에요. 이 수술을 받는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매우 복잡한 수술이죠.” 가장 어려운 암 수술 중 하나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무너졌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100명 중 70명이 죽고, 30명만이 산다고 했다. 그러니 50/50보다 더 안 좋은 확률이었다. 주저 앉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땐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고, 내 머리에 온갖 줄들이 걸려있었다. 그들은 걱정해주었지만, 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술을 받는 것도 간단하지 않았다. 9주 간의 약물 치료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피하지 않았다. 

의사는 나에게 수술을 빨리 해야한다고 했다. 그날 당장. 4~5일 전엔 물도 삼킬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말해준 것이었다. 다음 주가 나에겐 없었다.

상상할 수 있듯, 수술장으로 나는 걸어 내려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채. 깨어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들은 나를 인위적인 코마 상태로 만들었고, 경막외 마취에 들어갔다. 나는 침대에 앉아있었다. 내가 깨어있을 때, 그들은 바늘을 찔러 넣었다. 3~4일동안 일어날 수 없을 거란 걸 알았다. 수술에서 회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들은 나를 잠에 빠져들게 했다. 

깨어나서 처음 들은 단어가 기억난다..

“암을 제거했습니다.”

반쯤 깨어있었고, 반은 잠들어있는 상태였다.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게 그들이 말한 상황이었다. 

10일 동안 집중 케어를 받았다. 심장에 합병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혈압도 문제였다. 10일 동안, 나는 다시 한 번 50/50의 상황에 빠졌다. 

나를 죽일 수도 있는 아주 심각한 감염이었다. 수술의 더 위험한 면이었다. 의사들은 가족에게 고지했다. 내가 좋은 상황이 아니라고. 무서웠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무서웠고,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가족들은 내 주위에 있었다는 걸 내가 잘 몰랐다. 딸, 아들이 울고 있다는 건 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이들과 내 형제자매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 수술 이후 4개월이 지났고, 나에겐 그 이상의 시간이었다. 알고 있다. 수술 이후 좋은 결과가 있었고,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회복하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긴 과정이다. 내 몸이 변했고, 무언가가 내 몸에서 제거되었고, 식도도 없었다. 그러니 남은 인생에서 너무 많이 먹을 수는 없었다. 많은 것이 변했다. 

내 인생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그 이상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축구 선수였을 때,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일했다. 문제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병원으로 걸어간 이후, 내 삶이 바뀌었다. 암으로 죽는 사람들 보았고, 나도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었다.

 

축구 안팎으로 내가 가진 반응은 놀라웠다. 

알렉스 퍼거슨 경이 나에게 전화와 문자를 남겼다. 회복하길 바란다며, 충분히 나는 강한 사람이라 말해주었다. 첼시부터 스토크까지 내가 뛰었던 모든 팀들의 모든 이들이 응원해주었다. 이들을 위한 편지를 남겼다. 에드 우드워드, 나는 편지들을 그에게 부쳤고, 모든 이들이 나에게 있어주었다고 말해주었다. 많은 힘이 되었다고.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인지 나조차도 몰랐다!

솔직히 미국과 호주 모든 이들이 편지를 보내오고, 전화를 주었다. 놀라웠다. 심지어 오늘도. 내가 가는 어디든. 2~3야드마다 멈춰서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내게 영감을 주셨습니다.”라고. 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따뜻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정말 놀라웠다.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정말 감사했다. 홈 경기에 가서 선수들을 만나는 것도 고마웠다. 그 후에 집에 갔는데, 내 키가 10피트는 되는 것 같았다. 

다시 일상을 찾고 싶다. 할 수 있다면. 자신감도 다시 얻고 싶고. 아시다시피, 많이 자신감을 잃었다. 다른 일 때문에도 사람은 죽을 수 있지만, 암은 굉장히 크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방향이 있다면, 찾는 것이 답이다.

매일 밤 기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생각했다. 내일도 여기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자는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일어날 수 있을까? 그 순간이 무서웠고, 벗어나고 싶었다. 

이만큼 오게 된 것에 행복하다. 모든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오늘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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