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앨비스턴
- 출장485
- 총득점7

엿새 후 그는 Portsmouth에서 리그 데뷔전을 치렀지만, 1976/77 시즌에 이르러서야 맨유의 주전이 될 수 있었다.
1977 FA 컵 리버풀과의 결승전에서 스튜어트 휴스턴(Stewart Houston)이 부상을 당하자 앨비스턴은 교체 선수로 출전했다. 그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United의 2-1 승리를 이끌어 최초로 우승 메달을 안았다. 그는 자신과 교체된 휴스턴에게 메달을 건네주었지만 휴스턴은 이를 사양했다. FA 컵 결승전 출전 이후 몇 시즌 동안 앨비스턴은 휴스턴과 왼쪽 백 자리를 놓고 주전 경쟁을 벌였다. 결국 그는 그 자리를 차지했고 1980년대에는 거의 대부분 베스트 11 선발 주전 선수로서 활약했다. 1974년에서 1988년까지 그는 485 경기에 출전했고 7골을 기록했으며, FA 컵 결승전에 네 번 출전해서 당시 클럽 신기록인 세 개의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드 트래포드를 떠난 앨비스턴은 다소 저평가되었는데, 이는 그의 A 매치 출전 기록이 14회에 불과하여 국제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주 그의 경기를 본 사람들 중에서 맨유의 눈부신 역사상 그보다 더 훌륭한 풀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Defender
Scottish
1957년 7월 14일
1974년 7월 1일
1974년 10월 9일
맨체스터 시티 전(홈) 리그 컵
1988년 8월 1일
마이클 캐릭 감독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원정 1-1 무승부 이후 레니 요로의 짧지만 강렬한 활약을 곧바로 칭찬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마이클 캐릭 감독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최상의 경기력은 아니었지만, 극적인 상황 속에서 얻어낸 승점 1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베냐민 세슈코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을 터뜨린 뒤, “팀으로 함께 움직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이클 캐릭 감독은 또 한 번의 중요한 추가시간 골을 터뜨린 베냐민 세슈코가 이제 더 도약할 준비가 됐다고 믿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