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로

데니스 로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데니스 로는 올드 트라포드에 입성하기 전에 허더즈필드 타운, 맨체스터 시티, 그리고 토리노 등 세 개의 팀에서 뛰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난 뒤 다시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고 은퇴했지만, 붉은 유니폼을 입고 보낸 11년의 시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금발 영웅은 맨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다. 1960년대를 풍비한 조지 베스트와 보비 롭슨, 데니스 로는 삼위일체로 '베스트, 로, 찰턴'이라는 대명사가 됐다. 맨유 서포터들에게 세대를 뛰어넘는 영웅이 되어 대대로 칭송 받았다.

스트레드포드 엔드에 모인 맨유 팬들을 열광시킨 데니스 로는 팬들이 꼽은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를 두고 '왕'이라는 별명으로 부리는 것도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용맹하게 상대 수비를 습격하고, 눈부신 속도로 침투해 수비를 공포에 떨게 했으며, 공준전에서도 지는 일이 거의 없었던 데니스 로는 그야말로 올드 트라포드의 왕이었다.
 
데니스 로
데니스 로: 스트레드 포드 엔드의 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역사상 위대한 선수들이 많았지만, 60년 넘게 직접 지켜본 필자는 올드 트라포드에서 데니스 로가 처음으로 뛰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개인 의견으로, 그 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었다.

로의 경기 방식은 아주 특별하고 독창적이었다. 찰턴은 장엄한 스타일과 맹렬한 슈팅 그리고 현란한 패스 능력을 갖고 있었다. 조지 베스트는 이름 그대로 '베스트'였다. 많은 관찰자들이 이들 모두를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신전에 올려두는데 동의할 것이다. 이런 메가스타들 중 최고를 꼽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내 선택은 언제나 로였다.
로는 전설적인 빌 샹클리와 같은 시기에 리즈 로드에 있었다. 샹클리는 어린 선수들을 발전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샹클리는 로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허더즈필드를 떠나 리버풀로 갔다. 그는 로가 그와 함께 안필드로 가길 바랐다. 하지만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그래서 맨체스터 시티가 로의 다음 행선지가 됐다. 그의 명성은 이미 널리 퍼져있었다. 메인 로드에 도착한지 1년 만에 이탈리아로 이적한다. 토리노에 입단한 로는 빛나는 경험을 통해 활약했다. 문화와 삶의 바식이 영국가과 달랐지만, 히버니안에서 함께 온 조 베이커와 함께 뛰며 로는 좋은 활약을 했다. 로와 베이커는 1년 더 있었지만 길가에서 생긴 사고에 연루되며 이탈리아 생활을 마치게 된다. 베이커는 생명을 위협할 만한 부상을 입었다. 나중에는 잘 회복됐다. 로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
 
당시 맨유 감독이었던 맷 버스비는 늘 로의 영입을 탐냈고, 1962년 여름에 마침내 그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 다음 이여기는, 여러분 모두 아는대로다. 로는 뮌헨 항공 참사 5년 뒤 맨유의 새로운 세대를 이끌 최적임자로 활약했다.

올드 트라포드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기억한다. 로의 단순한 스타일에 즉각 매료됐다. 흑백 사진이었지만 로는 초현대적인 이탈리아 부츠로 개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과 데뷔전에 득점한 로는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고, 그 뒤로 계속 좋은 활약을 했다.

맨유는 로의 입단 첫 시즌에 강등권에서 간신히 벗어났지만 FA컵 우승을 이뤘다. 웸블리에서 치른 결승전에서 레스터 시티가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로의 득점으로 맨유가 3-1 승리를 거뒀다. 리그에선 고전했으나 로는 리그와 컵을 합쳐 29골을 몰아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맨유는 1965년과 1967년에 두 번의 리그 우스을 이루며 황금 시대를 맞았다. 1968년에는 뮌헨 참가 10년 만에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했다 웸블리에서 치른 포르투갈의 벤피카와 결승전에서 4-1 승리를 거두며 이룬 우승이었다.

하지만 뮌헨에서의 재난은 맨유의 성공 속에도 결코 기억에서 잊힐 수 없는 일이다. 맨유는 참사에 바칠 수 있는 성공을 이뤘다.

웸블리에는 8만에서 8만 5천여 관중이 몰렸다. '왕'이 이 잊을 수 없는 행사에 빠져 팬들은 슬퍼했다. 무릎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어 이 광경을 TV로 봐야 했다.
 
보비 찰턴이 유러피언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데니스 로는 1968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뛰지 못했다.
내게 영원히 재생될 기억의 밤이었지만, 로가 함께 순간을 공유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난 무신론자이지만 데니스 로는 신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실망하지 않으려면 우상을 직접 만나지 않는 게 좋다고들 한다. 데니스 로에겐 사실이 아니다. 그는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이고, 늘 그의 팀에 특권이 되었던 인물이다.

데니스, 좋은 기억을 많이 줘서 고마워요. 왕이여, 만수무강하소서!

이 글은 인사이드 유나이니드 매거진 2019년 9월호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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